일본 에피소드 💬
폭설 속 비행기
일본 홋카이도에 가기 하루 전날,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 날 경기도 지역에 눈이 예고되어 있었다. 예상 강설량을 보니 대설이나 폭설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에 가는데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공항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 밖을 보았는데... 큰일 났다.
겨울왕국...?
지금이야 눈 예보만 있으면 도로에 염화칼슘을 무지막지하게 뿌려대기 때문에 예전보다 길이 미끄러울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예전에는 이 정도로 제설작업에 치밀하지 않았다. 새벽에 아파트 창문 밖에로 본 도로에 검은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얀 눈이 깔려 있었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천공항은 여기보다 눈이 덜 왔을 수도 있고, 공항이니까 제설 작업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아직 비행기 지연에 대한 메시지가 오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옛날만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공항버스는 예약하고 타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냥 선착순으로 현장발권을 통해서 타야하는 시스템이었고 혹시나 승객이 많으면 버스 회사에서 임시배차를 내서 수송에 힘을 쏟아줄 때였는데 이 날 눈이 심각하게 많이 내린 것을 보고 서둘러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로에 차가 없다.
택시가 문제가 아니다. 아예 차가 없다. 하긴 이런 날에 누가 외출을 하고 누가 운전을 하고 싶겠어? 카카오택시로도 택시가 안 잡혀서 검색과 취소를 반복하고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저 멀리 빨간 램프가 켜진 택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고마웠던 순간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기사님도 눈이 많이 내린 것을 보고 오늘은 손님이 없을 것 같아서 운행 빨리 마치고 들어가려고 하는 길이었다고.
무사히 공항버스도 탑승했고 평소보다 더딘 속도였지만 인천 공항에도 잘 도착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지연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비행기가 뜰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비행기 탑승까지 완료를 했는데
비행기가 좀처럼 뜨지를 않는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이미 눈이 내리고는 있었지만 점점 눈이 강해졌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그런데도 비행기는 아직 대기 중이다. 이때부터였다.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승객 전원에게 비행기가 뜨지 못하니 내리세요라고 하면 어쩌지?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았고 내 소중한 연차도 사용했는데 꼭 가고 싶은데 어쩌지?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기장님의 능력으로 무사 비행기 가능했으면 좋겠다며 세상의 모든 신들을 찾아 비행기가 제발 뜨게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겠단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어딘가 하차할 수 있는 게이트를 찾아서 이제 내리라고 방송할 줄 알았다.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 비행기가 향한 곳은 빈 게이트가 아닌 자동차로 따지면 세차장과 같은 곳이었다. 비행기에 눈이 많이 쌓여 눈을 한 번 치우고 가야겠단다. 내리라고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렇게 난생처음 비행기가 세차(?)하는 모습도 보고 비행기에 쌓인 눈을 치운 후 비행기가 이륙했다. 지연된 지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말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구름 위로 올라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하나 보이지 않는 환한 세상이 보이지 시작했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날아서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관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총 비행기 안에서만 3시간 30분을 꼼짝없이 앉아 있어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펼 수 없어 불편했지만 비행기가 뜨지 못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였기에 안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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