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피소드 💬
일본 철도 자살 사고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도쿄 타카다노바바에 있는 학교에 다녔는데 언제나 그렇듯 학교가 끝나고 내가 이용해야 할 전철역으로 갔을 때 여기저기서 기분 나쁜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지 전광판을 확인해 보니 내가 타는 세이부신주쿠선에 인명사고가 났다는 표시와 함께 전철 운행이 중단되었다는 글이 표시되어 있었다.
사실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은 많이 겪어보지 않을 일일수도 있지만 유학생이나 해외취업으로 일본에서 재류하고 있는 경우, 건널목 차단기에 걸려서 사고가 나거나 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인명사고가 굉장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아서 항상 내가 타야 하는 전철 노선이나 구간을 피해서 인명사고가 났기 때문에 인명사고 때문에 내가 타야 할 전철이 움직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때 맞이한 상황이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만약 하교하고 있는 길이 아니라 등교를 하는 경우였다면 역무원에게 지연 증명서를 발급 받았겠지만 지연 증명서를 받는다고 해도 나의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차라리 하교하는 길에 이런 일을 맞이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던 곳은 대체 전철노선이 있는 곳도 아니어서 그냥 열차 운행이 재개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런 기다림 속에서 걱정 하나가 마음속에서 굉장히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그 걱정은 바로 사고 흔적이었는데 하필 이번 인명사고가 내가 승하차를 하는 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내릴 때는 제발 사고 흔적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을 비롯한 세상 모든 신에게 드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는지 여기저기에서 인명사고를 수습한 흔적을 볼 수 있었으며 특유의 냄새까지 느껴졌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시각과 후각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 일이 나에게 굉장히 충격적이기는 했나 보다. 다만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 것이 있다면 피해 남성이 자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전거로 통행하다가 차단기에 걸려 넘어진 것이라는 것과 다행히도 피해 남성이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위에서도 살짝 언급하기는 했는데 일본에는 철도를 이용한 자살과 선로에서의 사고를 포함한 인명사고가 굉장히 많다.
1위: 동일본 여객 철도 도호쿠 본선 27건
2위: 도카이 여객 철도 도카이도선_(JR 도카이) 25건
3위: 게이힌 급행 전철 게이큐 본선 23건
4위: 서일본 여객 철도 JR 고베선 22건
5위: 동일본 여객 철도 조반선 21건
5위: 동일본 여객 철도 중앙 본선_(JR 동일본) 21건
7위: 서일본 여객 철도 산요 본선_(JR 서일본) 20건
8위: 도부 철도 도부 도조선 19건
8위: 규슈 여객 철도 가고시마 본선 19건
8위: 세이부 철도 세이부 이케부쿠로선 19건
위의 랭킹을 보니 도쿄나 그 주변에 해당하는 도시를 달리는 노선이 거의 반은 되는 것 같다.
1위: 도쿄도 137건
2위: 가나가와현 86건
3위: 오사카부 74건
4위: 지바현 68건
5위: 사이타마현 59건
6위: 아이치현 58건
7위: 효고현 54건
8위: 교토부 29건
9위: 후쿠오카현 27건
10위: 이바라키현 22건
이 랭킹도 10곳 중에 5곳이 도쿄나 도쿄 주변의 도시다. 그만큼 수도권에서 인명사고가 많다는 얘기인데 물론 도심이 전철 운행 횟수와 노선이 다양하기도 하고 곳곳에 아직도 철도 건널목이 굉장히 많은 편이기 때문에 인명사고의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인명사고 중 특히 자살의 이면에는 그 사고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받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잠시 생각을 바꿔서 자살을 한 당사자의 주변 사람이 받을 피해 내용을 정리해 보고 싶다.
- 열차를 멈추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살 기관사
-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구조대원
- 사고 순간을 겪어야 할 승객들
- 열차 운행 중지로 인해서 역과 열차에서 발이 묶여버린 수 많은 승객들
- 사고 현장의 잔상을 보게 될 주변 시민들
- 막대한 금액의 피해보상을 해야 할 유족
나의 일본인 지인의 친구 중 한 명이 도쿄에서 야마노테선을 운행하는 기관사인데 그 기관사가 동료와 얘기하던 중에 인명사고를 겪어본 기관사가 직접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역에 진입을 하다보면 열차에 뛰어들겠다 싶은 사람의 눈이 있어요. 일반인과는 다른.
친구 중 구급대원이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선로에 뛰어든 사람의 경우는 수습하기가 힘들 정도로 처참해.
여기서 조금 더 얘기해보고 싶은 것은 '막대한 금액의 피해보상을 해야 할 유족'이라는 내용인데 한 사람의 고의적인 자살로 인해 열차의 운행이 멈춰버리면 해당 열차뿐만 아니라 운행 재개까지 제대로 운행되지 못한 많은 열차들이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유족은 사고가 일어난 해당 열차뿐만 아니라 지연을 겪은 모든 열차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 운행 편수가 많은 전철인지, 이용객이 많은 복잡한 통근시간인지를 다 따져서 피해보상 금액이 산정되는데 보통은 수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도쿄를 기준으로 평일 통근시간(08:00~08:59)의 JR중앙선만 해도 상하행선 합쳐서 42대나 다니기도 하고, 일본은 사고 수습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억대 피해보상 금액도 충분히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실제로 철도 회사가 이 금액을 유족에게 다 받아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어린 아이 때부터 '他人に迷惑をかけないで(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라)'라고 가르친다. 열차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만드는 행동이며 폐를 끼치는 행동이라는 것에는 전혀 이견이 없는 사실 일 것이다. 일본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줄어들어가기를 바란다.
✅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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