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피소드 💬
뭐라고 하는거야?
첫 일본 여행이 끝나고 드디어 귀국하는 날이었다. 호텔에서 나와 난바 OCAT에서 공항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들어왔고, 기사님이 내려서 티켓확인을 시작했다. 다른 한 아저씨가 승객들의 캐리어를 받으며 무언가를 물어보며 짐을 싣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짐을 싣는 아저씨가 나한테 초스피드 일본어로 뭔가를 물었다.
'와렘노아랴스까?'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일단 변명 한 바가지부터 늘어놓고 시작하겠다.
이때 내가 일본어 자격증 2급을 가지고 있을 때였는데, 일본어 자격증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책을 놓고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는 것과 말하는 능력은 별개다. 언어 자격증과 상관없이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하면 그만큼 들리기도 하는데 나는 일본인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말할 용기도 없었고 들리는 것도 시험 안내방송에서 '天気がいいから散歩しましょう。(날씨가 좋으니 산책합시다)'라는 정제된 톤의 말 밖에 들리지 않을 때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투리였다. JPT든 JLPT든 표준어로 공부를 하는데, 오사카는 사투리가 있는 지방이다. 유명하잖아, 간사이벤. 표준어도 조금 벅찬 느낌인데 사투리까지 겹쳐버리면 더 안 들린다. (나중에 사투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너무 분해서 비싼 돈 주고 책까지 사서 마스터했다)
또 다른 문제는 남자의 목소리다. 일본어를 공부한 지 20년이 가까이 되고 있는 지금이야 괜찮지만 여자가 말하는 어투와 남자가 말하는 어투가 너무 달라서 남자가 하는 말은 더 못 알아들을 때였다. 예를 들어서 이런 거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고마웠어요)'를 일본어로 할 때 '아리가토-고자이마시타'인데, 남자들이 이걸 빨리 읽으면 'ありゃした(아랴시따)'가 되고, 'こちらです(이쪽입니다)'를 일본어로 할 때 '고찌라데스'인데 남자들이 말할 땐 'こっちっす(콧찟스)'처럼 되는 느낌. 사실 지금도 여자가 말하는 어투가 더 듣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종합해 보자. 말하고 듣기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사투리까지 섞여 있는 남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말한다. 못 알아들었어 당연히.
그래서 '네?'라고 다시 되물어보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하려 했다.
'하이?'
그런데 그 순간!! 아저씨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알아버린 거다. 아저씨는 나에게 분명 이렇게 말했다. '와레모노 아리마스까? (깨지는 물건 있습니까?)'
그런데 나도 대책이 없었던 게, '하이?'라고 끝까지 말을 했어야 했는데 말하는 도중에 무슨 뜻인지 알아버린 탓에
'하?'
까지만 말해버렸다. 심지어 '하'에서 너무 높은 톤으로 정확하게 끊어버렸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뭐??????'라는 뜻. 근데 이게 나처럼 높은 톤에서 발음을 정확하게 끊어버리면 '뭐 인마?'처럼 들린다는 게 문제지.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저씨가 나를 째려보더니, 아니야 죽일 듯 노려본 것 같아. 어쨌든 노려보더니 내 캐리어를 버스 안쪽으로 거의 집어던지듯이 밀어 버렸다. 뭐 이건 내가 스미마셍이라고 할 타이밍도 없었어. 뒤에 줄이 많아서 버스를 빨리 타야 했거든.
아저씨는 나를 일본 사람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큰데 왜냐하면 그때 한창 유행했던 머리 스타일이 샤기컷이었고 내 머리 색깔은 밝은 갈색에 내가 입은 옷이 일본 노는 형들처럼 화려했거든.
내가 한국 사람으로 보였다면 영어로 물어봤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걸로 봐서는 날 분명히 일본 사람으로 생각했을 거야. 그렇게 내 캐리어는 내팽개쳐졌다. 깨질 물건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어쩔 줄 몰랐던 에피소드인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아저씨 미안해요 내가 한국인이라 몰랐어요. 근데 앞으로 발음 좀 정확하게 해 주세요'
✅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된 글입니다.
✅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정확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시 확인해 주세요.
'💬 여행 이야기 > 🔸 에피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에피소드 💬 엘리베이터야 열려라! (0) | 2023.09.17 |
---|---|
일본 에피소드 💬 안녕? 건강해? (2) | 2023.09.11 |
일본 에피소드 💬 친구야 도와줘! (2) | 2023.09.01 |
일본 에피소드 💬 저 혼자 왔어요! (4) | 2023.08.29 |
일본 여행 체크 💬 제현레벨(制県レベル) (2) | 2023.08.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