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피소드 💬
승객을 기다리다가 지연 출발한 항공기
인천공항에서 센다이로 출발하던 날이었다. 항상 저가항공을 타다가 센다이는 현재 저가항공이 취항하지 않아서 유일하게 운항하고 있는 아시아나를 탔는데 생각보다 출국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 보였다. 9시 35분 출발에 맞춰 미리 항공기에 탑승해서 기내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적었다.
센다이로 가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이코노미석이 10열부터다. 내가 앉았던 자리가 12열이었는데 상당히 앞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내 옆의 모든 좌석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모처럼 굉장히 쾌적하게 비행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승무원들이 분주하다.
내가 앉은 12열의 두 열 앞, 즉 10열의 빈 좌석 3개를 가르키더니 이쪽으로 누군가를 앉히고 짐은 그 위에 올리는 것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몰랐는데 이윽고 방송이 나온다.
저희 항공기, 출발시간이 되었지만 현재 탑승하지 않은 승객을 기다리고 있어 출발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쩐지 9시 35분이 되었는데도 출발하지를 않더라. 그렇게 5분, 10분이 지나고 12분이 지났을 무렵, 일본인 승객 3명이 탑승했다. 홍씨 개인적으로는 비행기 탑승 시간에 늦는 사람은 국적을 막론하고 굉장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극소수의 사람 때문에 이 항공기를 탑승한 사람의 일정이 늦어지고 더 나아가 귀국 편에 오를 항공기까지 늦어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인데 적어도 자신 때문에 늦어진 비행기라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고 타는 것이 맞지 않나? 하지만 이 승객들, 타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내가 개인 사업자로 항공기를 운영했으면 나는 항공기 문 닫고 출발했다고 독한 마음과 독한 눈빛으로 탑승하는 승객들을 노려봤는데 순간 그 분노가 사그라진다. 왜냐하면..
늦은 일본인 승객 3명이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래, 어르신들이니까 이런 거 잘 몰라서 늦을 수 있지, 그냥 이해하자. 그렇게 분노했던 마음이 싹 사그라졌는데 이 할아버지들, 비행기가 뜨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떠든다. 이 할아버지들이 원래 앉아야 할 좌석이 이코노미석의 맨 앞자리가 아니었지만 승무원들의 배려로 그 자리에 앉았으면 조용히라도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코노미석 바로 앞쪽이 더 비싼 돈을 주고 탄 비지니스석 좌석이었거든. 그 사람들은 얼마나 씨끄러웠겠어? 그렇게 분노 지수가 스멀스멀 다시 올라가던 중 할아버지들의 어이없는 대화가 들려왔다.
한 2분 늦었나? '빨리 오세요' 라고 해도 그렇게 못하지
이 어르신들은 2분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냐, 12분이야. 12분 늦어서 활주로에 비행기가 연달아 딜레이 되면서 비행기는 거의 30분 가까이 늦게 떴어. 그리고, '빨리 오세요'라고 해도 그렇게 못한다는 그 말. 그 말이 너무 당당하게 들려서 '뭐지 저 사람들은?'이라는 분노가 MAX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이 때 화장실에 가려고 하다가 제지당하자 다른 할아버지가 그러다 바지에 오줌을 싸는 것 아니냐며 자기들끼리 수군수군거린다.
할아버지, 이건 할아버지들이 늦게타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안전상 지켜야 하는 부분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참 쉽지 않은 분들이라는 생각에 점점 싫은 감정이 들기 시작했고, 비행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아주 당당하게 내가 앞질러 가주겠다는 마음으로 센다이 공항까지 꾹꾹 누르며 왔다. 그리고, 비행기에 내리는 순간 앞지르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또다시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그 이유는,
항공기 문 앞에 휠체어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 그렇지, 거동이 편하지 않은 분들은 빨리 걸으라고 해도 그럴 수가 없지. 아마도 이 분들은 인천공항에서도 휠체어의 도움을 받았거나 아니면 느린 속도로 열심히 걸어오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지방 공항들에 비하면 인천 공항은 굉장히 넓어 어르신들이 게이트를 찾아오는 것이 어려울 수 있었겠구나, 화장실이고 뭐고 여유가 없었을 수 있었겠구나 라고 점점 어르신들을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내릴 때까지 거의 갱년기 감정조절 급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경험했던 홍씨, 이 어르신들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되어 일정상 센다이 공항에서 밥도 못먹고 시내로 이동하게 되었다. 정말 이번 여행도 시작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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